

1961년 11월.
매서운 칼바람이 몰아치던 늦가을의 어느 날. 제 1차 영원 전쟁이 발발했다.
숭고한 목적도, 명확한 사유도 없이 마법부 내의 권익다툼이 크게 번진 것을 시작으로, 단지 빌미가 필요했던 몇몇 주도 세력에 의해 약 10여년간 이어진 전쟁은 전 마법세계를 온통 헤집었다.
혈통, 가난, 그저 이름 붙일 수 있는 모든 것이 지난한 대치의 이유가 되었고 휴전과 재전을 반복하던 전쟁의 칼날 아래 사회는 처참히 파괴되어 갔으며 약자의 편에서 지팡이를 들었던 이들은 가장 먼저 짓밟혔다.
황무지 위에 무고한 피가 흘러 강을 이루고 저주가 고여 인간의 발이 닿기 어려운 땅으로 변하는 등 더 이상 좌시할 수 없는 사태까지 치닫자 스스로를 발키리Valkyrie, 정의를 가리는 자로 부르는 다섯의 마법사가 모여 지팡이를 들었다. 그들이 전장의 한복판에 나서며 말하길,
「 모두가 알고 있음에도 모두가 몰라야만 하는 작은 명분,
그 하나를 우리가 주겠소. 」



그야말로 기적이었다.
지지부진 이어져 온 전쟁을 끝내는 것은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음에도 양 측은 그들의 손을 마지못해 잡았다.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혼란은 가라앉았고 세상은 휴전에서 종전에 이르기까지 불과 6개월도 걸리지 않는 기함할 만한 결과를 만들어낸 그들을 가리켜 영웅이라 칭했다.
발키리의 손을 잡은 새로운 마법부의 지휘 아래 마법 세계가 차츰 안정을 되찾아가며 전쟁을 기억하는 이들도 조금씩 사라질 즈음, 빠르게 혼란을 종식시킬 목적으로 새로운 종교가 창궐하기도 했으며 무자비한 파괴와 저주의 대상이 됨으로 인해 완전히 망가진 호그와트의 재건허가가 떨어지는 등 서서히 일상은 다시금 이전으로 돌아가는 듯 보였다.

그로부터 20년 후, 1991년 9월.
마법부는 황폐화되었던 호그와트의 전면 재보수 완료에 맞춰 전쟁 이후 첫 세대의 아이들이 입학할 때가 되었음을 공표하기에 이른다.
이른바, 평화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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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것은, 어쩌면 아주 사소한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아포시스Aposis
상처가 아물지 않은 이들은 여전히 멸망을 이야기한다.
전쟁 중 직접적인 피해가 막심했던 사회적 약자들을 중심으로 형성된 종말론을 바탕으로 은밀하게 퍼져나간 이 종교는 세계의 멸망이야말로 단 하나의 진리요 미래이므로 이를 위해 모두가 힘을 길러 이에 대비해야 함을 설파해왔다.
자신들을 ‘어비스Abyss’라 칭하는 마법사 집단이 주축이 되어 만물은 진리 앞에서 평등하기에 약자 역시 교리에 따라 얼마든지 완전한 자유를 얻을 수 있다 말한다. 이를 일컬어 '구원론Apocatastasis' 이라 칭하며, 아포시스라는 이름의 기원이 되었다.
구원론에서는 인간이 평생동안 받을 수 있는 고통의 총량은 태어날 때 부터 정해져 있으므로 삶이라는 고행을 계속해서 이어가는 것이 아닌 하나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더 큰 구원을 얻을 수 있으며, 이는 대상을 가리지 않고 내려진 은총이라 부른다.
이단 취급을 당하고 있음에도 꾸준히 세를 확장해 현재는 알음알음 마법세계에 뿌리 내리고 있으며, 그 신도 역시 그럭저럭 많은 편이다.
한편 세간에서는....
이런 아포시스의 행보에 불만을 표하는 이들도 많았다. 멸망론은 미친 사람들의 현실 도피를 위한 사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부터 극단적으로 사교를 배척하려는 사람, 그리고 단순히 의견일 뿐이지만 동조하기엔 찜찜하다에 그치는 사람 등, 여러 군상이 있었으나 결국 멸망론, 그 단어에 거부감을 느끼는 것은 동일했다.
「 만물은 그 끝에서 비로소 구원에 도달할지니,
모든 것을 잃은 자, 그리하여 갈구하는 자는 여기로 오라.
진리 앞에서 인간은 누구나 평등하다.」
